중세 유럽의 귀족 작위

소년연금술사라는 대단한 물건 입니다. 라는 글을 보고 포스팅.
소년연금술사의 팬이냐 안티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귀족 작위에 대한 약간의 오해가 있는 듯해서.
(전 소년연금술사를 안 읽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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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작위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우선 근본이 되는 봉건제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 해 봅시다. 아, 물론 여기서 말하는 봉건제는 유럽의 Feudalism을 말하는 겁니다.
개념적으로 말하자면, 봉건제도는 은대지 제도beneficium와 종사 제도comnitatus의 결합품입니다.
중세 초기의 혼란했던 시대에 , 프랑크 제국이 건설되고 나서 왕은 봉신들에게 병역 의무의 대가로 토지의 용익권을 주었습니다. 봉신들은 토지에서 나오게 되는 재산으로 자신과 병사들을 무장시키고 왕이 소집할 경우 전쟁에 나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토지는 왕의 것이었고,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토지는 봉신의 죽음과 함께 다시 왕에게로 귀속되었습니다.
하지만, 관습적으로 이러한 토지는 군사적으로 복무할 적당한 후계자가 있다면 충성 서약을 통해 상속되기도 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토지의 용익권을 부여하는 은대지의 개념에서 상속이 허가되는 종신은대지, 즉 봉토feodum로서 하사되기도 하였습니다.
시대가 흘러가면서 점차 토지와 작위는 계승되는 것이 일반화 되었으며, 왕이 함부로 작위를 박탈하거나 상속을 거부할 수 없는 권리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원칙적으로야 왕은 봉토를 몰수하거나 상속을 거부할 권리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귀족들은 결혼관계를 통해 횡적으로 결속되어 있었고 또한 왕이 이유없이 경쟁자의 봉토를 몰수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는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뚜렷한 이유가 없다면 다수 귀족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남자 상속자가 없는 경우에도 봉토와 작위는 완전히 몰수되지 않고 잠재적으로 상속은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작위의 상속은 일반적으로 가문의 힘이 흩어지지 않게 장자 상속을 원칙적으로 했으며, 결혼을 통해 귀족들 간에 횡적으로 연결되는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다만, 결혼 관계를 통해 작위를 물려받는 경우에 있어서는 엄밀히 따지면 '아내의 작위를 대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상속은 두 사람의 자녀 대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작위는 국가와 시대마다 조금씩 달랐습니다. 작위가 잘 체계화 되어 있던 프랑스를 기준으로 볼 때 귀족에는 크게 9가지 단계가 있었습니다.

0. 귀족의 혈통을 가진 자 - "마크 오브 노빌리티"를 소지한 자
  (성씨 앞에 드de, 르le, 폰von, 반van 등이 붙는 사람)
1. 기사 - (프) Chevalier/Dame    (영) Knight/Dame     (독) Ritter/Frau
2. 남작 - (프) Baron/Baronne    (영) Baron/Baroness    (독) Freiherr/Freifrau
3. 자작 - (프) Viscomte/Viscomtesse (영) Viscount/Viscountess (독) Landgraf/Landgräfin
4. 백작 - (프) Comte/Comtesse    (영) Count/Countess    (독) Graf/Gräfin
5. 후작 - (프) Marquis/Marquise   (영) Marquis/Marquise   (독) Markgraf/Markgräfin
6. 공작 - (프) Duc/Duchesse     (영) Duke/Duchess     (독) Herzog/Herzogin
7. 공작 - (프) Prince/Princesse   (영) Prince/Princess   (독) Prinz/Prinzessin
8. 왕  - (프) Roi/Reine       (영) King/Queen      (독) König/Königin
9. 황제 - (프) Empereur/Imperatrice (영) Emperor/Empress    (독) Kaiser/Kaiserin

* 엄밀히 따지자면 0과 1, 그리고 8과 9는 '귀족 작위Noble Title'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 영국의 경우 영국내의 백작은 Earl 이라고 하고, 대륙의 백작은 Count 라고 합니다.


공작Duke은 라틴어 dux에서 나온 말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지방 군대의 지휘관을 의미하는 말이었지만, 로마 멸망 후 프랑크 왕국에서 넓은 영토를 가진 사회적 지도자에게 이 용어를 가져다 사용했습니다. 흔히 '왕이 되지 못한 왕족이 갖는 작위'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있지만, 실질적으로는 1600년대까지 공작의 작위는 대체로 왕실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습니다.

후작Marquess은 국경지대marches의 봉토를 소유한 백작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국경은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지역이었고, 때문에 충성심 높은 신하들에게 맡겨졌습니다. 백작은 하나 이상의 영지를 소유할 수 없다는 프랑크 왕국의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직위였기 때문에 백작보다 한 단계 위로 여겨졌습니다. 후작은 때로는 변경백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백작Count은 라틴어 comes에서 왔습니다.
로마시대 코메스는 황제를 측근에서 모시는 관리였으며, 프랑크 왕국에서는 지방사령관을 의미했습니다. 영국에서 백작을 뜻하는 단어 얼Earl은 노르만 어에서 지도자를 의미하는 얄Jarl에서 나왔습니다.
일반적으로 공작이나 후작에 비해 하위 작위라는 느낌이 강하지만, 몇몇 강대한 백작들은 공작과도 능히 그 세력을 겨눌 만 했으며 (예컨대 백년전쟁 당시의 아르마냐크 백작의 권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때로 어떤 백작들은 공작으로 지위가 격상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백작이라는 단어에서 나라country 라는 영어 단어가 파생되기도 했습니다.

자작Viscount은 본래 백작count의 보좌관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프랑크 왕국의 vicecomites는 백작의 대리인이나 부관으로 백작 대신 영지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백작의 작위가 세습하는 것이 일상화 된 이후 자작의 작위 역시 세습되는 것으로 변했으나, 꽤 오랜 기간 동안 자작이라는 작위는 그 자신의 독립적 권력을 얻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자작의 작위는 백작으로 만들 만큼의 가치는 없는 사람들에게 수여되기도 했습니다.

남작Baron은 프랑크 왕국에서 자유민을 의미하던 단어 baro에서 나왔습니다.
로마 멸망-중세 초기의 혼란기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보다 권력 있는 상급자에게 보호를 요청하고 종사 관계를 맺기를 바랐습니다. 이렇게 종사 관계를 통해 큰 땅을 소유한 영지를 남작령barony라고 불렀고, 만약 이 땅의 주인이 귀족이라면 남작baron, 평민이라면 남작령의 주인seigneur de la baronnie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남작령은 18세기 말까지도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었고, 이런 이유로 남작은 소소한 귀족 작위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작위 체계에서는 남작은 왕으로부터 직접 토지를 하사받은 귀족을 의미했습니다. 영국내 귀족의 상당수는 남작이었기 때문에 영국에서 'Baron'이라는 말은 귀족, 혹은 영주를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실제로는 9단계 이상이나 되는 많은 작위를 모두 사용하는 곳은 몇몇 국가뿐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옛 영국(앵글로-색슨 족이 지배하던 시기)에서는 위의 표에 대치시켜보면 1, 2, 4, 7, 8에 해당하는 작위들 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국가에 따라서는 저 작위들 사이에 추가로 들어가는 작위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핀란드, 스웨덴,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기사의 종자도 귀족에 준하는 신분으로 대접받았습니다. 또, 영국에서는 국가 재정을 늘이기 위해 남작 아래에 준남작(Baronet)이라는 귀족신분을 만들기도 했으며, 스페인에서는 '식민지 총독'을 공작과 왕족 사이의 귀족으로 대접했고, 독일에서는 후작(변경백=Markgraf)과 공작(Herzog)사이에 Fürst라는 신분이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지배자는 대공(Archduke) 이라고 했고, 주권을 행사한 공작들을 대공(Grand Duke)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복잡하죠?
작위 체계는 국가에 따라서 단 3가지(기사, 백작, 왕)만 있는 곳에서 열 가지 정도로 복잡하게 나뉜 곳까지 다양합니다. 본래 백작(Count)의 부관지위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던 자작(Viscount) 계급이 없는 국가가 많은 편입니다.

유럽 귀족의 작위는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기보다는 땅에 귀속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때문에 상당수의 귀족들은 다수의 작위를 보유하기도 했고, 때로는 이 작위들을 분할상속 하거나 결혼예물로 증여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아키텐 공령과 가스코뉴 공령, 그리고 푸아티에 백령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키텐과 가스코뉴의 공작이자 푸아티에 백작"인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딸을 결혼시키려 하는데 상대방이 능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작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면 딸에게 푸아티에 백령의 권한을 주어 결혼대상자(사위)를 푸아티에 백작의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절대왕정 시기 이전까지는 귀족의 작위가 반드시 그 귀족의 권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강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 백작이 공작과 대등하게 권력다툼을 하거나, 엄청난 부를 가진 남작에게 후작이나 공작이 돈을 빌리러 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작위를 번역하면서 중국식 오훈작(공/후/백/자/남) 체계에 맞추어 번역하는 일이 다보니, Prince와 Duke 를 번역할 때처럼 의미가 잘못 전달될 수 있는 부분도 종종 생깁니다. 본래 Prince 라는 말은 '왕자' 뿐만이 아니라 공작위를 나타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지배자, 군주라는 의미를 갖기도 하거든요.
예를 들어 Prince of Wales 라고 하면 '웨일즈 왕자'가 아니라 '웨일즈의 지배자', '웨일즈 공작'으로서 대대로 영국황태자에게 수여되는 작위입니다. 어느 영화에서는 이걸 '웨일즈 왕자'라고 번역해서 빈축을 산 일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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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대충 작위에 대한 설명을 한 것 같으니...
by 미스트 | 2008/07/05 03:03 | 중세 이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7)
We shall overcome... someday...


We shall overcome, we shall overcome,
we shall overcome someday.
Oh, deep in my heart, I know that, I do believe.
We shall overcome someday.

우리는 이길 거에요, 우리는 이길 거에요,
언젠가 우리는 이겨내리라.
오, 가슴 속 깊이 그걸 알아요, 믿고 있어요.
우리는 이길 거에요, 언젠가.

We shall be alright, we shall be alright,
we shall be alright someday.
Oh, deep in my heart I know that I do believe.
We shall overcome someday.

우리는 괜찮을 거에요, 우리는 괜찮아질 거에요,
우리는 괜찮아질 겁니다, 언젠가.
오, 가슴 속 깊이 그걸 알아요, 믿고 있어요.
우리는 이길 거에요, 언젠가.

We shall live in peace, we shall live in peace,
we shall live in peace someday.
Oh, deep in my heart I know that I do believe.
We shall overcome someday.

우리는 평화롭게 살 거에요, 우리는 평화롭게 살 거에요,
우리는 평화롭게 살 거에요, 언젠가.
오, 가슴 속 깊이 그걸 알아요, 믿고 있어요.
우리는 이길 거에요, 언젠가.

We are not afraid , oh, lord, not afraid
oh, lord, not afraid today
Oh, deep in my heart I know that I do believe
We shall overcome someday.

우린 두렵지 않아요, 오, 주여, 두렵지 않아요,
오, 주여, 두렵지 않아요 오늘은.
오, 가슴 속 깊이 그걸 알아요, 믿고 있어요.
우리는 이길 거에요, 언젠가.

We shall overcome, oh, Lord, oh, Lord.
We shall overcome some day.
Oh, deep in my heart I know that I do believe.
we shall overcome someday.

우리는 이길 거에요, 오, 주여, 오오, 주여.
언젠가 우리는 이겨낼 거에요.
오, 가슴 속 깊이 그걸 알아요, 믿고 있어요.
우리는 이겨낼 거에요, 언젠가.


we shall overcome
by 미스트 | 2008/07/03 01:30 | 이런저런 이야기들 | 트랙백 | 덧글(1)
명예혁명의 역사적 맥락에 대해 쥐뿔은 아시고 명예혁명 운운하시는가...라니. ㅠ_ㅠ
기병대 혹은 드라군 장교 - 이 잘나가는 친구들은 양측에 모두 있었다. 그가 쓰고 있는 투구는 독일/네덜란드 형 투구이다. 흉갑과 배갑을 착용해야 된다는 규칙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왜냐하면 드라군은 실질적으로 말을 탄 보병으로, 일반적으로 도보로 싸웠기 때문이다. 네이즈비 전투의 마지막 순간에 존 오케이 연대장의 연대가 말 탄 체로 왕당파 보병들에게 돌격한 사례 등이 있긴 하다. 기병총에 덧붙여 권총으로 무장한 것이 기마 전투에 대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로드 브룩 연대의 장창병 - 브룩 자작 로버트 그레빌은 자신의 보병 연대에게 특색있는 보라색 옷을 입혔다. 연대는 런던에서 결성되었으며, 9월 경에는 약 1천 명이었지만 엣지힐에서 큰 피해를 입고 11월에는 480여 명으로 줄어있었다. 브렌포드에서 다시 한 차례 패배를 겪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치필드 공성 당시 연대장이 저격당해 전사함으로서 해산되었다.
단발파 장교 - 이 단발파(의회파가 머리를 짧게 잘랐으므로 이렇게 불렀는데) 장교는 목에 당시에 휠락 총기를 감을 때 쓰던 스패너를 걸고 있고, 값비싼 엽총을 들고 있다.
머스킷 총병 - 이 병사는 화승식 머스킷으로 무장하고 있다. 완성된 탄약포 "열두사도"와 여분의 총알이 든 가죽 주머니, 화약통을 어깨끈에 매달고, 오른손에는 무거운 화기를 쏠 때 받치는 거치대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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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없이는 혁명도 없었다는 글에 대해 명예혁명을 거론했더니 어느 분께서, 
'명예혁명의 역사적 맥락에 대해 쥐뿔은 아시고 명예혁명 운운하시는가? 기가차서 말이 안나오네;' 라는 말씀을 하셔서 ..... 긁적긁적.
.... 그냥 지나가기엔 기분이 그다지 좋지 못해 트랙백 걸어서 글 써봅니다.



Glorious RevolutionBump of Chicken의 The Living Dead 앨범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장난쳐서 죄송합니다. 이 말장난은 이전부터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습니다. -_-;;;

장난을 했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by 미스트 | 2008/07/01 05:54 | 이런저런 이야기들 | 트랙백 | 덧글(3)
지금의 심정
이런 느낌이랄까. 마음 속의 폭력성과 자제력이 서로 다투는 느낌.
다들 아시다시피, 원본은 명작EQ만화 [모두 노라쓰의 하늘 아래]


시위대가 폭력을 휘두를 줄 몰라서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게 아닌데,
얼마든지 전경들 병원 줄줄이 실려나갈 정도의 폭력도 가능할텐데,
그래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직접적으로 폭행에 노출되어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비폭력을 외치고 있는 지금의 상황.
그런 비무장 비폭력의 시민들을 상대로 소화기를 분사하고 쇠뭉치를 던지고
곤봉으로 후려갈기고 방패로 찍고 심지어 쇠파이프까지 사용하는 전경들의 행동.
그런 행동을 '선진국에서는 최루탄은 기본이지'수준의 발언으로 정당화하려는 경찰수뇌부...

아아, 정말...........
by 미스트 | 2008/06/29 21:13 | 이런저런 이야기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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