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기사의 무기와 방어구 무기와 방어구


= Arms and Armour =
무기와 갑옷

 

기사의 갑옷은 그의 삶에 가해지는 폭력적인 양상에 대한 보호 기능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군대와 사회에서 그가 가지는 엘리트로서의 지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갑옷의 질과 갑옷에 나타나는 장인의 솜씨는 효율적인 측면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초창기의 메일 호버크(mail hauberk) 때부터 갑옷은 고가품이었는데, 중요한 장비이면서 동시에 기사로서의 화려함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양쪽 측면을 대표했다. 특히, 중세 말기에 이르러 갑옷은 부의 증명이자 시대 말기의 유행으로서 주목할만한 장식품이 되어갔다. 이런 이유로, 많은 갑옷 혹은 “장비(harness)"들은 예술품으로서 살아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옷의 최우선 목적은 전장에서 기사를 그의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고, 중세기 동안에 더 나은 신무기가 등장할 때마다 갑옷 역시 발전해갔다. 오랜 기간 동안 기사의 갑옷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사슬 갑옷(chain mail)은 훌륭한 방어력을 제공했지만 랜스(lance;기병창)나 화살의 직격을 견디기는 어려웠다. 이는 금속으로 강화된 코트 오브 플레이트(coat of plates)나 패디드 갬비슨(padded gambeson)1)과 같이 추가의 방호복을 덧대는 변화를 이끌어 냈고, 나중에는 갑옷은 견고한 금속 판과 라임즈(lames)라고 알려진 작은 금속판으로 유연성있는 관절을 구성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플레이트 아머의 무게는 완전히 갖추어진 체인 메일 한 벌과 비슷하다. (50 lbs./23kg 정도) 그러나, 착용자에게 딱 맞게 만들어진 것이라면 체인메일보다 편안하다. 왜냐하면, 무게가 어깨에 완전히 걸리는 대신에 온 몸에 고르게 분배되기 때문이다. 기사가 말에서 떨어졌을 때 무거운 갑옷 때문에 일어서지 못한 유일한 시기는 14세기 중반인데, 풀 메일(full mail)에서 플레이트 아머(plate armor)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던 이 시기에는 관습적으로 이 두 갑옷을 겹쳐 입었기 때문이다.



아래에 예시되는 그림들은 각 시기의 중요한 변화들을 나타낸 것이다.





노르만 기사, C. 1066 (Norman Knight C. 1066) ::

수백년 동안, 몸통 갑옷(body Armor)의 기본적인 형태는 호버크(hauberk), 혹은 비르니(byrnie)라 불린 사슬 갑옷 윗도리(chain-mail shirt)로 구성되었다. 이는 15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몸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바이웨(Bayeux)의 테피스트리에 그려진, 헤이스팅스(hastings)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말에 오르는 노르만 기사가 입거나 들고 있는 장비들을 통하여 다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팔꿈치까지 내려오는 소매를 가진 무릎 길이의 호버크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것은 말을 타기 편하게 하기 위하여 앞과 뒤 중앙에 트임이 있었다. 원뿔형 투구는 나잘 바(nasal bar)라는 코를 방어하는 돌기가 있었으며, 다리에는 가죽이나 누비 옷(padded cloth)으로 만든 정강이받이(greaves)를 신었다. 높은 등급의 군주들만은 그들의 다리와 발을 보호하기 위하여 쇠사슬 바지(mail stocking)를 신었다. 노르만 기사들은 긴 연모양의 방패(long, kite-shaped shield)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종종 그림에서 보이는 소용돌이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다. 이런 것들에 특별한 집단의 기사나 가족들을 구별하기 위한 문장으로서의 기능이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의 주 무기는 검과 장창이었다; 대조적으로, 섹슨 족은 주로 전투 도끼를 들고, 작고 둥근 방패를 사용했다.




  

 


 

노르만 기사, C. 1180 (Norman Knight C. 1180) ::

기사의 갑옷과 장비는 수 백년 동안 본질적으로는 변화하지 않았으나, 좀 더 정련­­·개선되었다. 메일 호버크(mail hauberk)는 갬비슨(gambeson)이라는 패드를 덧대 만든 꽉 끼는 모직제 튜닉 위에 입었는데, 길이는 무릎 정도까지 내려왔으며, 팔은 벙어리 장갑(mitten)과 일체화 되어 손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기사는 허리 부분의 트임을 통해 뒤집어 쓰듯 갑옷을 입고 허리를 졸라 매었다. 다리와 발 역시 이제 사슬갑옷으로 완전히 감싸졌다. 호버크 위에 기사는 길고 소매가 없는 헐렁한 서코트(surcoat)를 입었는데, 여기에 그 자신의 독특한 문장을 그려넣었다 - 문장학(heraldry)의 시작이었다. 투구는 이제 타격과 화살을 비껴내기 쉽도록 둥근 모양을 하였으며, 나잘 바(nasal bar)는 더욱 대형화 되었다. 호버크의 목 부분은 가죽끈으로 투구와 묶을 수 있을 정도로 늘어났는데, 이를 애븐테일(aventail)이라고 한다. 칼은 특색있는 “물고기 꼬리(fish tail)" 형태의 폼멜을 가지며, 창은 적의 몸에 너무 깊이 박히는 것을 막기 위한 돌기가 달린 폭이 넓은 날을 가진다. 방패는 짧아지고 더 삼각형에 가까운 모양이 된다.


 

 

  

 





 

튜턴 기사, C. 1270 (Teutonic Knight C. 1270) ::

이 튜턴 기사는 스베르트브로데르(Schwertbroder)2)의 잔존자 중 한 명이다. 구성원 대부분은 리투아니아(Lithuania)로의 원정 도중에 기습을 받고 참패하여 전사했으며, 생존자들은 1237년 튜턴 기사단에 흡수되었다. 1270년 당시 기사들의 투구는 공격이 빗나가게 곡면처리를 하여, 머리 꼭대기 부분이 좀 더 반구형으로 변했다. 투구의 꼭대기에는 적당한 장식물이 부착되었다. 호버크는 더 짧아졌으며, 호버크 자락 아래로 갬비슨을 볼 수 있다. 방패는 이제 더 작아졌으며 철 따위의 금속재로 만들어졌다. 이런 이유로 그것들은 히터-실드(heater shield)라 불린다. 폴린(poleyns)3)은 무릎 관절의 앞과 옆을 완전히 덮을 만큼 대형화 되었다. 검은 새로운 형태의 바퀴(wheel)모양 폼멜을 가진다.


  

 

 

 






 

이탈리아 기사, C. 1400 (Italian Knight C. 1400) ::

이 기사의 장비는 사슬갑옷에서 판금갑옷으로 변화하는 마지막 단계의 모습을 대표한다. 그의 판금 갑옷(plate armour)은 완벽하지만, 그는 여전히 애븐테일(aventail)과 하버전(habergeon;hauberk보다 짧은 사슬갑옷)을 착용하고 있다. 그의 바시넷(bascinet)은 “돼지 얼굴(pig-faced)"이라는 특색있는 면갑(visor)이 부착되어 있는데, 이것은 내린다면 전투중 기사의 얼굴을 완벽하게 보호해 준다. 흉갑(breast plate)은 과거에도 간혹 쓰였던 것으로, 더 정련되고 발달했으며 오른팔 안쪽에 기사가 돌진할 때 그의 랜스(lance)를 고정할 수 있는 튀어나온 소켓이 생겼다. 건틀렛은 종 모양이 되었다; 손가락들은 캔버스(canvas)로 만들어졌다. 판금 갑옷은 다리의 앞과 뒤를 가려준다(하지만 아직 후부 흉갑(back plate)은 착용하지 않았다.); 정강이받이(greaves)와 넓적다리 가리개(cuissed)는 다리 안쪽 접합부에 경첩으로 고정되도록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폴린(polyens)과 쿠터(couters)4)의 날개 모양의 철판은 추가적인 보호 기능을 한다. 기사는 여전히 갑옷위에 주폰(jupon)을 입지만, 판금갑옷의 방어력으로 인하여 방패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기사, C. 1425 (Italian Knight C. 1425) ::

15세기에는 판금 갑옷(plate armour)은 진정한 본래의 특성을 발휘했는데, 사슬갑옷(mail)은 단지 취약한 접합부 혹은 샅과 엉덩이처럼 좀 더 유동성이 필요한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서만 쓰였다. 이 기사는 부유한 계층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가 훌륭한 질의 밀라노 제 갑옷 한 벌(suit of milanese armour)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북 이탈리아(northern Italy)는 독일(Germany)과 함께 좋은 갑옷을 생산한다는 평판을 양분하고 있었으며, 독자적인 둥그런 스타일(rounded style)을 개발했다. 몸통 장비(body harness)에서 그는 두 가지 형태의 투구 중 고를 수 있다; 머리를 완전히 가리며 목에서 점점 좁아지는 조립형 폐쇄 아멧(armet)이나, 혹은 여기에 나와있는 것 같이 턱과 목이 가려지지 않지만 목 뒤쪽은 가려지는 더 개방적인 형태의 샐릿(sallet)이다. 이것은 “벤티안(Ventian)" 스타일의 살렛으로, 면갑(visor)이 없이 얼굴이 드러나는 것이다. 어깨 부분은 파울드론(pauldrons;어깨 가리개)로 보호되며, 앞 뒤 가슴받이(breast and back plate)가 양쪽 다 갖추어져 있는데 이것들은 엉덩이까지 철판이 뻗어내려와 있다. 그는 당대풍의 긴 박차와 쇠사슬 쇼세(mail chausses)를 입고 있다.


 







게르만 기사, C. 1470-80 (German Knight C. 1470-80)
::

이 기사는 더 각져있고, 뾰족한 모양으로 이탈리아 제와 구분되는 게르만(German), 혹은 “고딕(Gothic)” 풍 갑옷을 입고 있다. 이것은 화려하고 과장된 기색이 있다; 종종 철판의 표면에는 물결모양 혹은 세로의 홈이 파여 있었으며, 그 끝부분은 뾰족했다. 게르만 갑옷장인들(armourers)은 뾰족한 모양으로 장식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 그림에서 우리는 기사의 발의 사바톤(sabatons), 무릎의 폴린(poleyns), 팔꿈치의 쿠터(couters), 건틀릿 소맷부리(gauntlet cuffs) 등에서 뾰족한 끝모양을 볼 수 있다. 흉갑(breast plate)은 종종 두 부분으로 만들어졌는데, 아래쪽이 위쪽을 덮으며 갑옷 가운데가 뾰족하게 솟아있다. 이 기사는 얼굴이 가려진 고딕 스타일 샐럿(Gothic-style sallet)을 쓰고 있으며, 그의 턱과 목은 흉갑에 부착되는 비버(bevor)라는 부분에 의하여 보호된다. 기사의 하반신은 사슬갑옷 스커트(mail skirt)로 보호되지만, 그 위에다가 넓적다리 위쪽을 보호하기 위하여 테싯(tassets)이라는 두 장의 철판을 흉갑에 매달아 늘어뜨릴 수도 있다. 그의 칼은 더 긴 칼날과 손잡이를 가진 “한 손 반(hand-and-a-half)" 검이다.

 

  


- 주석 -

1) 사슬갑옷이 몸을 쏠지 않게 하고, 적의 무기가 사슬갑옷을 꿰뚫을 경우 무기를 막기 위하여 사슬갑옷 안쪽에 입는 누비옷. 가난한 보병의 갑옷으로도 애용되었다.

2) 검의 형제-리보니아(Livonia)를 개종시키려고 했던 소규모 기사수도회

3) 갑옷의 무릎 관절부

4) 갑옷의 팔 관절부


 

 

 

* 현재는 없어진 Darkhold라는 해외 사이트의 자료를 번역한 것입니다. 

 

- 사진 설명 -
* Kunz Lochner 의 Full Suit of Plate Armour. c.1548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품


덧글

  • rkemdcjdwj 2010/09/03 15:17 # 삭제 답글

    맨 위의 사진이 너무 맘에 들어서 제 논문 활용할까 합니다. 출처도 밝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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