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위한 죽음 - 로도스 섬 전투 (上) 전장의 기사들

1522년, 로도스 섬.
"최후의 십자군"


1522년.
오스만투르크의 "대제" 슐레이만은 "그리스도의 뱀둥지" 로도스 섬을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로도스 섬은 아크레의 함락 이후 성 요한 기사단이 새로이 근거지를 마련한 곳으로 프로방스, 오베르뉴, 일-드-프랑스, 이탈리아, 에스파냐, 잉글랜드, 게르만 등 각각의 언어와 지역으로 구성된 '리그'로 나누어진 약 600여 명의 기사와 그 종자들, 기사단에 고용되거나 혹은 신앙의 문제로 기사단에서 복무하기를 원하는 1천 5백여 용병들이 그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소아시아의 마지막 십자군 본거지인 아크레가 함락된 지 3백여 년이 지났지만 성 요한 기사단은 그들의 목적 - 성전을 그만두지 않았다.
장창 대신 총과 대포를 들고, 전투마 대신 전함에 탑승하여 이슬람 인들의 배를 무차별적으로 습격하였다. 이슬람 뱃사람들에게 이들의 이름은 악마와 동의어였다.
성 요한 기사단은 고작 7척의 배로 동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성 요한 기사단은 또한 당시로서는 가장 뛰어난 요새를 갖추고 있었다.
아주 옛날에 건설된 성벽을 개조하고 또 개조하여 대포의 포격에도 견딜 수 있는 외벽을 만듦과 동시에, 해자를 향해 집중 포격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변경해 갔다.
술탄 메메드 2세는 1480년에 성 요한 기사단을 괴멸시킬 목적으로 전함 160척의 대함대와 10만의 군대를 동원했으나, 큰 희생만 치르고 물러났다.
이후 2대에 걸쳐서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은 로도스를 개 닭 보듯이 했다.
하지만, 슐레이만은 달랐다. 그는 손톱 밑에 박힌 가시 같은 기사단을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슐레이만은 1주일 만에 베오그라드를 점령한 전적이 있었다. 슐레이만에게 성 요한 기사단은 그보다 더 쉬운 상대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슐레이만은 우아하게도 라틴어로 된 편지를 보냈다. 그 내용은, 지금까지 자신이 거둔 전공을 기사단도 축하해 달라는 것이었다. 빙빙 돌린 항복권고를 받은 기사단장 필리페 빌리에르 드 릴라당(Pilippe Villiers de L'Isle-Adam)은 기사단이 이슬람 인들을 상대로 세운 전공을 적은 편지를 답장으로 보냈다.
슐레이만은 좀 더 단도직입적인 편지를 다시 보냈다.
즉시 섬을 떠나라. 원한다면 크레타나 그 밖에 바라는 곳 어디든지 모든 유물과 보물을 가지고 갈 수 있게 해 주겠다. 로도스의 주민들 중 원하는 자는 떠날 것을 허락하며, 남는 자는 약탈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도 보장한다. 하지만 저항한다면 모두 죽여 버리겠다…….
릴라당은, 성 요한 기사단을 아는 사람이라면 기독교인이든 이슬람인이든 예상할 수 있었듯이 - 슐레이만의 항복권고를 무시했다.
슐레이만은 곧 300여 척의 함대와 10만의 병력, 그리고 그 2배의 노역자들을 동원해 로도스 섬 공략에 나섰다.


6월 26일, 로도스 항구 앞에 오스만 투르크의 300척의 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위대 격인 1만의 병사들이 상륙하여 막사를 건설하고 대포와 공성기를 운반하는 등 전투 준비를 했다.
약 한 달 뒤, 술탄 슐레이만이 도착했다. 이때는 이미 10만의 투르크 병사들이 해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깃발이 수평선이 안보일 정도로 흔들렸다.
7월의 마지막 며칠 동안 전투 준비를 모두 끝낸 오스만 투르크 군은 마지막으로 성 요한 기사단에게 편지를 보냈다. 여러 차례의 항복 권고를 거절했으므로 무력으로 점령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예고대로, 8월 1일 본격적인 전투가 개시되었다.
40문에 달하는 사석포와 어마어마한 바실리스크 대포가 불을 뿜었다.
델 카레토 성채에서부터 코스퀴노 성채, 영국 성채, 에스파냐 성채, 성 조르주 성채까지 한 차례 포격이 훑고 갔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 도시가 파열하는 포탄으로 벌집이 된 것이다.
포격이 계속되는 동안, 성 요한 기사단의 기사들은 풀 슈트 오브 플레이트 아머로 완전 무장하고 성벽위에 일렬로 꼿꼿이 서서 그들을 맞이했다. 포격이 끝날 때까지 기사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이렇게 서로간의 '인사'가 끝났다.


이후 약 한 달간, 투르크 군은 온갖 방법으로 공격해왔다.
대포의 포격이 계속되었고, 참호를 파며 접근하여 성벽에 기어오르려 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여기에 침착하게 대응했다. 투르크 군의 대포가 불을 뿜으면 성벽 뒤에 숨었다가, 대포를 식히려 할 때 뛰쳐나와 역으로 포격을 가했다.
투르크의 공격은 유럽의 공성전 전술보다 단순했다. 예를 들자면, 유럽에서는 참호를 Z자 모양으로 파서 적의 공격에 대비했지만, 투르크 인들은 참호를 I자 모양으로 팠다. 정확한 대포의 포격 한 방이면 참호 내의 인원은 전멸해버리는 것이었다.
물론, 대포로 그 안을 맞추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성 요한 기사단에는 그가 있었다.
가브리엘레 타디니 디 마르티넨고. 크레타 출신의 공학자이자 대포전문가.
그는 성 요한 기사단의 성채를 대포에 견딜 수 있게 개조한 사람이자, 당대 최고의 포격 기술자였다.
마르티넨고는 성벽에서부터 성벽 바깥의 여러 지점까지 명중시키기 위한 정확한 대포의 각도와 화약량을 알고 있었다. 마르티넨고의 지시에 따라 성 요한 기사단의 대포들은 정확한 '저격'을 시작했다.
대포를 설치하려는 투르크 병사들의 머리위에 포탄이 떨어졌다.
대포의 사격을 지휘하던 투르크 군 지휘관이 포탄에 맞아 죽었다.
화승총병과 포수 지휘관들은 차례차례 부상을 입거나 죽었다.
다시 그 자리를 메운 지휘관들도 마찬가지 운명을 맞이했다.
이 한 달간 기사단의 희생자는 기사 두 명과 용병 몇 명.
투르크 군의 사기는 눈에 띄게 꺾이고 있었다.



그렇게 9월이 찾아왔다. 9월에 들어서면서 투르크 군은 대포에다 땅굴 공격을 추가했다.
땅굴을 파서 성벽 아래에 폭약을 묻고 그것을 폭파시켜 성벽을 무너뜨리려는 작전이었다.
마르티넨고는 여기에 대해서도 대책을 세워두고 있었다.
성벽 안쪽 벽을 따라서 나란히 북을 묻어둔 뒤, 그 위에 콩 몇 알을 놓아둔 장치가 바로 그 대비책이었다. 콩이 튀어서 북소리가 나면 그 아래에서 굴파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땅굴을 발견하면, 기사단은 맞굴을 파서 대응했다. 좁은 공간에서의 백병전에서 투르크 군은 기사단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모든 굴을 막을 수는 없었다. 투르크 병사들은 최소한 50개 이상의 땅굴을 팠다.
9월 4일, 영국 성채가 지뢰로 무너진 것이 그 첫 번째 성공이었다. 지뢰가 폭발한 성벽에는 약 36피트에 달하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무너진 외벽 위로 무스타파 파샤 휘하의 2만의 병력이 투입되었다. 이것을 방어하기 위해 기사단에서도 일-드-프랑스 분대와 카스티야 분대가 증파되었다.
기사단은 내벽까지 후퇴한 다음 그 곳에서 적을 맞이해 싸웠다.
무너진 성벽을 타넘은 투르크 병사들의 눈에 기사들이 임시로 만든 응급장벽과 그 위에 거치된 대포가 보였다. 대포와 소총이 불을 뿜고, 쇠뇌가 화살을 날렸다. 전열에서는 기사들이 검과 장병기를 휘두르며 몰려오는 투르크 병사들과 격렬한 백병전을 벌였고, 그 뒤편 성벽 위에서는 소총병과 쇠뇌수들이 밀려오는 투르크 군을 향해 끊임없이 사격을 퍼부었다. 해가 질 때까지 싸운 끝에 투르크 군은 2천의 전사자를 내고 후퇴해야만 했다. 기사단에서도 48명을 잃었다.
슐레이만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병사들에게 돌격을 명령하고 또 명령했지만, 번번이 큰 피해만 입고 물러나야 했다. 병사들이 성벽 앞까지 도달한 일도 몇 번인가 있었지만, 기사단이 사용하는 '그리스의 불'에 숯더미가 되곤 했다.
하루에 100발이 넘는 포탄을 발사했지만 기사단에 변변한 피해를 주진 못했다.
무려 두 달 동안 이런 상황이 계속 되었다.

슐레이만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다. 그는 겨울이 되기 전에 이 전쟁을 끝내고 싶었다.



- 계속 -

덧글

  • Mr술탄-샤™ 2008/03/13 12:42 # 답글

    잘 보았습니다. 요한 기사단은 아직도 체인메일 하버젼을 입고 있는 것이 이색적입니다.

    이런 걸 보면 갑옷이 전투에서 얼마나 유효한 물건인지 쉽게 알 수 있는데도 국내 양판소의 희생자들은 여전히 갑옷병진론을 외치는 것이 얼마나 난감한지 모릅니다.

    몇개월 전부터 체코 베스트아머리는 표면경화열처리 방식을 도입하여 가장 튼튼하고 성공적인 갑옷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미스트님께서도 갑옷을 사는데 마일드 스틸의 나약한 방어력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면 베스트아머리의 표면경화열처리 옵션이 크게 마음에 드실 것입니다.
  • Reuentahl 2008/03/14 11:08 # 답글

    링크 신고드려요 '0')/
  • 예니체리 2008/03/17 14:34 # 답글

    링크해드리겠습니다.
  • 선비彦 2008/03/19 23:30 # 답글

    허... 메메드 2세도 포기한 곳이 있었군요. 좋은 포스팅 잘 봤습니다.
  • 선비彦 2008/03/21 12:55 # 답글

    참, 링크 신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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