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무술, 이상과 실제. 전장의 기사들


* 일단 워밍업 하고 시작해봅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사의 모습은 번쩍이는 판금갑옷을 입고 말 위에서 혹은 땅에서 검을 휘두르며 싸우는 모습일 겁니다. 영화에서 흔히 보여주는 것처럼 현란한 칼놀림과 아크로바틱한 동작들이야말로 일반인들이 꿈꾸는 기사의 모습이겠죠.


* 요런거... 아, 물론 이건 쇼입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랄까... 이런걸 스테이지 컴뱃이라고 합니다.
 (물론, 영화 같은데 나오는 전투씬도 스테이지 컴뱃이죠.)
 실제 전투와 비슷하지만 훨씬 세련되고 화려하게 꾸민 것입니다.


* 스테이지 컴뱃을 직접 즐기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누구나 영화속의 주인공처럼 멋지게 활약할 수 있거든요.
 이 영상에서 기사와 싸우는 아가씨처럼 말이죠.
 가볍게 즐기는 경우는 이렇게 대강 맞춰서 싸우는 식으로 즐기지만,
 본격적인 경우는 대본까지 만들어놓고 하기도 합니다.

 아가씨 좀 멋진 듯.. >ㅅ<b



하지만 실제의 기사에게 전투 시작 이후는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였습니다.
무기를 들지 않은 사람과는 싸우지 않는다, 등 뒤에서 습격하지 않는다 같은 소위 '기사도적 예의'는 어느 정도 잘 지켜졌던 반면, 일단 전투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할 수 있는건 다 하는 싸움이었죠.



* 물론 이렇게 멋지게 싸울 수도 있습니다. .........................갑옷을 안입었다면.

여러차례 글을 썼다시피, 유럽식 갑옷은 그 강도가 매우 뛰어나고 특히 판금갑옷의 시대가 되면 검의 타격으로 상대를 죽이는 것이 무척 어려워집니다.
일검에 갑옷을 깊게 절단하고 치명상을 입히는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환상입니다. 실제로는 검으로 갑옷을 베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고, 질 좋은 갑옷을 사람이 착용한 상태에서 베는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검술은 (물론) 매우 중요한 기술이었지만 (특히 갑옷을 입지 않은 상대와 싸울 때) 갑옷을 입은 적에게 사용하기에는 다소 불확실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갑옷을 입은 적에게 검을 사용해 좀 더 확실한 타격을 가하기 위해, 검을 짧은 창처럼 사용하는 하프 소딩이라는 테크닉이 생겨났습니다.



* AEMMA의 하프소딩 테크닉 영상.
 하프-소딩 테크닉은 갑옷을 안입은 상황에서도 무척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테크닉을 사용해서 검을 단창처럼 휘두르면 힘을 싣기도 좋고 조준점이 흐트러지는 것도 덜하기 때문에 강한 힘으로 갑옷을 뚫거나 갑옷의 연결부위를 노리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쥠으로서 검을 '날붙이'가 아니라 '몽둥이'처럼 쓸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무리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더라도 충격까지 완전히 해소할 순 없었기 때문에, 머리를 반복해서 타격 당하면 뇌진탕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칼날 부분으로 치는 것보다는 폼멜이나 크로스가드로 후려갈기는 편이 더 효과가 좋았던 것이죠.
즉, 기사에게 검의 무기로서의 가치는 칼날에만 있는게 아니라 길게 튀어나온 크로스가드나 뭉툭하고 묵직한 폼멜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크로스가드를 곡괭이 날처럼 사용하거나, 묵직한 폼멜을 사용해 상대를 타격하고, 상대의 팔, 다리나 목을 압박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둔기가 갑옷을 상대할 때 좋은 무기로 대접받기도 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둔기는 중량이 끝부분에 실려 있기 때문에 타격력은 훨씬 증가하죠. 그리고 뾰족한 스파이크들은 타격력이 스파이크 끝의 한 점에 집중되는 효과를 주었기 때문에 갑옷을 뚫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 갑옷을 입고 싸우면 결국 종착점은 하프소딩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중세식 레슬링.



* 중세시대에도 맨몸뚱이만 가지고 치고받는건 중요했습죠.


중세식 레슬링은 현대의 레슬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온갖 기술들이 결합된 일종의 종합무술이라고 보는게 옳을 지도 모르죠.
중세의 기사에게 레슬링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갑옷이 잘 발달했기 때문에 타격기는 큰 쓸모가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칼날도 안들어가는 갑옷을 주먹으로 때려봐야 얼마나 타격을 줄 수 있을까요?
물론, 검의 타격으로 갑옷을 베는게 불가능하더라도 갑옷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부분을 공격하거나 혹은 머리를 노려서 뇌진탕을 노리거나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격기를 사용해 갑옷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부분을 공격하거나 관절부위를 꺾거나 하는 것을 노릴 수는 있겠지만, 타격기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힘들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사들은 타격기보다는 상대를 쓰러트리고 꺾고 누르고 당기는 등의 몸싸움을 더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실질적으로 적을 제압하기 위한 방법으로 연마되다보니, 중세 레슬링은 때리기 차기 꺾기 당기기 던지기 등 온갖 체술들을 포함한 것이었고, 단검 혹은 장검 등의 무기를 가지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중세의 레슬링은 무기를 들고 있을 때든 무기를 들지 않았을 때든, 갑옷을 입었을 때든 갑옷을 입지 않았을 때든 상대를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 사용하는 체술의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장검을 들고도 상대를 던질 수 있습니다.



결국 기사의 전투의 현실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검이 아슬아슬하게 닿을 것 같은 거리를 두고 서로의 현란한 검기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먼 거리에서는 일반적인 자세로 겨루다가, 가까이 다가서면 검을 하프-소딩으로 들고 단검을 언제든 뽑을 준비를 하고 가까운 거리에서 공방을 주고받다가, 상대를 끌어안거나 태클을 걸거나 밀치거나 다리를 걸거나 관절을 꺾거나 아무튼 무슨 방법으로든 상대를 쓰러트리고, 상대가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지쳐있거나 부상을 당했다면 그 상태에서 최후의 일격을, 그게 아니라 여전히 반격하려는 상태라면 그대로 덮쳐 누르고 단검을 뽑아 갑옷의 관절부위 등을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처음 쓰러진 쪽도 가능한 함께 쓰러지려고 하거나 상대가 덮쳐왔을 때 뒤집어서 자신이 유리한 포지션을 잡으려고 하고 자신 역시 단검을 뽑아 반격하는 등 할 수 있는 행동은 다 하는 것이죠.






* 치고 받고 구르고 아무튼 이기는거다!



그러니까
결국 기사에게는 유능제강이고 강능단유고 그런건 중요한게 아닌 겁니다. -_-;;;
무협지에서는 바닥을 구르는걸 수치로 여긴다는 말이 자주 나오지만 기사들은 그런걸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유든 강이든 필요하면 뭐든 써먹는다! 유가 이기거나 강이 이기는게 아니라 쎈 놈이 이긴다!
바닥을 구르든 어쨌든 마지막에 이기는 자가 승리자다!
 
실재 기사의 무술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아크로바틱하거나 멋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럽의 전장 환경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덧글

  • 오렌지군 2008/06/14 09:59 # 답글

    확실히 그렇겠군요...저 무거운 갑옷을 서로 입은 상태에서는 검술이고 뭐고 별로 통했을 여지가 없어보이는군요....
  • 미스트 2008/06/14 10:08 #

    검술로도 타격을 줄 수는 있습니다.
    다만, '서로 거리를 벌린 채 검술만 가지고 싸운다'라는게 환상이라는거죠. ^^;;;
  • 엔시스 2008/06/14 10:32 # 답글

    커그에 올리셨던 거군요.
    저런것도 사실 실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실제 전투는 저것보다 훨씬 흉험했겠죠-_-;;;
  • 카니발 2008/06/14 13:48 # 답글

    실제 전투에선 기사들끼리 서로 뒤집어지고 엎어뜨리고 아주 난장판이었을 것 같네요 -ㅅ-;


    잘 읽었습니다.
  • 史官論也 2008/06/14 15:03 # 답글

    역시...레슬링....!!!
  • 黑白 2008/06/14 15:04 # 답글

    역시 미스트좌는 서양검술 본좌!
  • 은혈의륜 2008/06/14 17:12 # 답글

    결국 전투던 전쟁이던 막판에는 누가 더 개싸움을 잘하냐가 승패를 가르는군요 'ㅅ'

    그나저나 저 아가씨 간지남.
  • 아루민 2008/06/14 19:44 # 답글

    잘 읽었습니다 :)
  • Entreri 2008/06/15 07:37 # 삭제 답글

    음; 근데 ringen이란게 현대에 보통 우리들이 생각하는 레슬링의 개념이 아니라 근접시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포괄적 개념이었죠. 상대가 판금갑옷을 입고 있다 하더라도 타격은 유효했습니다. 실제로 링겍의 메뉴얼등을 보면 껴안고 상대 투구의 관자놀이쪽을 건틀렛을 낀 주먹으로 치는 기술이 나와있죠. 혹은 붙어있는 상태에서 상대 무릅 안쪽 관절을 밟아서 뼈와 살을 분리 시키라고도 합니다-_- 그 외에도 무릅으로 갑옷을 입은 상대의 중심부위*-_-* 나 면상을 가격하는 기술들도 있습니다.
  • 미스트 2008/06/15 14:15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글을 좀 수정했습니다.
  • 탐슨가젤 2008/06/17 05:05 # 답글

    멋지네요
  • 강희대제 2011/03/12 23:42 # 답글

    저 중세레슬링 말인데.. 희안한 기술들이 많네요. 현대레슬링에서 볼 수 있는 엎어치기나 원랙, 투렉 테클도 많이 뵈이긴하는데.. 투렉태클은 견착수준이 그리 높아보이진 않는군요. 서브미션기는 안본것들이 많이있고..
  • 조흔곳이다! 2011/10/24 00:33 # 삭제 답글

    영화속: 챙챙 챙챙챙 채쟁 챙!

    실재: 챙챙 깡 탕깡 투닥 퍽퍽 깡깡 까악 툭탁!

    ㅎㅎ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아 그런데 위에 강희대제님 혹시 네이버 부흥에서도 활동하시는 그 강희대제님이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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